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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역사

무등산자 2006. 4. 7. 12:51

 

석기 시대는

 

지구 위에 사람이 처음 나타난 약 250만년 전부터 1만년전까지의 동안을 가르킨다.

동굴에서 살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나무나 짐승의 가죽으로 지은 막집 에서 살기도 하였다.

주로 돌을 깨어서 연장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식물성 식량이나 죽은 동물의 살을 먹고살았다.

점차 사냥의 기술을 발달시켜 나갔으며 동물성 식량을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활용하였다.

구석기인들은 전기구석기(12만 5천년 이전)에는 불을 다룰 줄 알았고,

중기 구석기(12만 5천년-3만 5천년) 시대에는 무덤을 만들어 죽은 사람을 애도하였으며,

후기 구석기 시대(3만 5천년-1만년) 에 이르러서는 동굴벽화를 남기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후대에 올수록 좀더 정교한 석기를 만들었으며 후기 구석기에는 뿔이나, 뼈, 상아까지 이용하여 작살이나,

창던지게, 귀바늘 등을 개발하였고 다양한 조각품을 남겼다.

섬진강 주변의 구석기 문화는 섬진강의 큰 지류인 보성강가의 유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순천과, 월평의 구석기 유적은 10만년에서 1만년에 해당하는 중기, 후기 구석기 문화이다.

구석기인들이 선호하던 터는 강이나 하천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았다.

물이 합쳐지는 두물머리나 둥글게 돌아가는 물돌이동 ,

또는 물가에서 어느 정도 멀어서 바라보기 좋으며

햇볕이 오랫동안 드는 곳에는 대부분 석기들이 발견되고 있다.

강의 상류나 하류 모두에서 나타나는 데 이는 구석기인들이 산골짜기나 평야 등

어느 곳에서나 살림터로 삼았던 것을 말해준다.

화순과 순천의 구석기 유적으로 볼 때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섬진강유역에 살고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석기 문화는 약 1만년전의 후빙기 이후 따뜻해진 기후 변화 속에서 야생곡물을 재배하고,

야생짐승을 집짐승화해서 주된 식량으로 삼는 새로운 생계방법을 가지고 있던 문화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농사는 나중에 지어졌고 채집과 사냥과 어로가 주된 생업활동이었다.

구석기와 확연히 달라진 것은 강변이나 바닷가에 사람이 마을을 만들고 정착해서 살았다는 것이다.

흙으로 만든 그릇들이 사용되었으며 새롭게 돌을 깨서 쓰는 것에 끝나지 않고 깨서 대충의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정교하게 갈아서 쓰는 간석기가 등장하였다.

토기는 간단한 모양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며 곡식의 저장이나 음식의 조리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기는 그것을 만드는 집단에 따라 모양과 무늬들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데 이러한 차이를 연구하면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선후관계를 알 수 있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지류인 보성강 지류에서 1980년대 후반에 발견이 되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사용한 흔적을 찾아내어서 밝혀지는데

그 사용한 흔적을 찾는 방법은 지표조사를 통하여 찾게 된다.

지표조사란 걸어다니면서 토기나 석기, 화살촉 등을 유심히 찾아보는 것인데 땅 밑에 유적이 있다면

바로 그 위의 땅 표면이나 주변에는, 다른 지역보다 유독이 유물의 조각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또,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 밭을 갈거나 묘를 파다가 이상한 옛날 그릇이나 돌로 만든 칼 같은 것

본적 없는지를 물어 찾기도 한다.

이러한 지표조사가 아직은 섬진강 주변에서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까지 딱히 이곳이 신석기 유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섬진강 주변의 자연 환경으로 볼 때 섬진강 주변에서 신석기유적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 글을 계기로 여러분이 직접 잘 부스러지고 유약이 칠해져 있지 않으며,

빗살무늬가 있는 토기나 갈아서 만든 석기가 주변에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

동기 시대란 구리와 주석등을 합금한 주조술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청동기를 제작 사용한 시기를 말하며,

청동기라는 물질문화로 물질문하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킨 교역, 분업,

동물력에 의한 농경, 도시, 문명, 국가의 발생, 세습적인 신분제, 문자의 사용,

정복전쟁이 나타나는 문화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빗살무늬 그릇과 대비되는 민무늬 그릇의 출현,

형태상 정제되고 용도에 따른 다양한 간석기의 사용, 농경의 보편화,

전형화된 고인돌 등 새로운 무덤의 출현,

그와 더불어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등을 그 시기의 특징으로 삼고 있다.

마을의 입지는 지역에 따라 해안과 강변의 저지대, 저구릉, 구릉 정상 등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하천에 인접한 구릉  상에 인접해 있는 것이 많다.

방어시설로는 마을 둘레에 긴 구덩이를 파고 나무기둥으로 울타리를 만든다.

   ***** 후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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