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은 백제 이전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이라 일컬었다.
통일신라 때는 무돌의 이두음인 무진악(武珍岳) 또는 珍岳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부터 서석산(瑞石山)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무등산의 산이름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 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이라 표기된 것이 처음이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편(雜志 第五 地理 第 三篇)에는 무진주(武珍州), 무주(武州)라는 지명이 보이고 잡지 제1,제사편의 소사조(小祀條),에 무진악, 무진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무등산이라는 산 이름이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고려사'인데
악지(樂志)의 삼국속악백제조(三國 俗樂 百濟條) 를 보면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에 잇는 큰 고을이다' 이 산에 성을 쌓았더니 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다'
(無等山 光州之鎭山,州在全羅道巨邑. 城 X 山 民 x 以安樂而歌之)라는 기록이 있어 무등산이란 산이름을 알려준다.
그 뒤 세종실록 지리지 나 신증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그 후의 많은 자료들이
무진악,무악,서석산 등 무등산의 여러가지 이름과 유래를 적었으며 무돌뫼,무당산,무덤산,무정산 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