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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맥스의 공채 1기 신입사원들이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분당 사옥 옥상에 설치된 위성수신안테나 사이에 모여 환히 웃고 있다. 성남/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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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밤샘근무 뒤 아침 8시반 칼출근…’ 벤처제조업으로 출발해 올해 매출 1조원을 목표할 만큼 성장한 휴맥스 직원들의 요즘 일상이다.
포털이나 게임업체 일부를 예외로 친다면, 성공적으로 대기업 진입문턱을 넘어선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삼보컴퓨터와 팬택계열의 몰락을 두고 사람들은 제조업 벤처의 한계를 논하기도 했다. 하지만 벤처 1세대에 해당하는 변대규 사장이 이끄는 휴맥스는 탄탄한 기술력과 국외시장 집중공략으로 ‘새로운 벤처 대기업의 전형’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1996년 아시아 최초로 유럽 표준규격(DVB) 디지털 위성방송용 셋톱박스를 개발한 휴맥스는 다양한 수신제한장치를 내장한 고급 제품으로 필립스, 소니, 톰슨 등 글로벌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셋톱박스를 내장한 디지털 텔레비전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으며, 2000년 독일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 미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등 10개국에 마케팅 현지법인을 세웠고, 중국·인도·폴란드에 연구개발 및 생산기지를 보유 중이다. 전체 정규직의 60%를 연구개발 인력으로 채우고 해마다 10여개의 특허를 따낼 만큼 기술기업으로서 입지도 탄탄하다.
젊은피들, 변화를 이끌다=휴맥스의 최근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대졸 신입사원의 공채이다. 20명의 신입사원들이 250대 1의 경쟁을 뚫고 지난 1월8일 입사했는데, 이는 경력직 수시 채용 위주인 벤처기업들의 관행을 깬 사건이었다. 그동안 회사 전체의 인력구조는 변 사장과 형·아우처럼 지내던 창립초기 멤버들이 25%, 2000년 전후해 대거 영입한 타기업 출신들이 75%를 차지하고 있었다.
회사의 ‘젊은 피’들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제도는 지난해 처음 시작한 사내 멘토링이다. 신입사원 12명이 이 제도의 수혜자들이다. 경력사원 채용을 위주로 하던 시절에는 ‘알아서 생존하라’는 풍토가 지배적이었다. 멘토로 참여한 소프트웨어 3팀의 노명준(35) 과장은 “퇴근 후에 가볍게 맥주 한잔 나누며 노하우를 전수해 줄 후배가 있어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사내 멘티(피교육자)로 뽑힌 박애경(27)씨는 멘토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벤처 고유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 박씨는 “미션 임파서블처럼 보이는 일도 도전하고자 하면 다 시켜주더라”면서 “덕분에 외부 네트워크 특성, 장비업체 현황 등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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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환 과장(위)과 강태영 사원이 셋톱박스하드웨어 개발팀에서 개발중인 제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성남/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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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시절 낡은 습관을 깨라=굿모닝 미팅, 수주 성공 골든벨, 복장 가이드라인 등 기존 사내문화를 바꾸기 위해 새로 도입한 제도들도 많다. 예전에는 잦은 야근 탓에 출근시간들이 들쭉날쭉하고, 막상 회사에 나와서도 피시만 들여다보다가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아침에 차 한잔씩 들며 소소한 일상 얘기도 나누고 회사업무도 공유하니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졌다”는 게 김동균 인력관리실 상무의 평가다. 벤처 때 생활습관이 바뀐 또다른 사례는, 복장 등 기본지키기 캠페인. 예컨대 청바지 대신 깔끔한 면바지를 입자는 취지인데, 이는 지난해 10월 ‘휴맥스 빌리지’를 새로 지어 입주하면서 닥친 변화다.
수주 성공 골든벨은 팀별 경쟁문화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특정 사업부문이 100억원 이상을 수주하면 전 사원에게 이메일로 이 사실을 알리고 축하 떡을 돌린다. 지난해 12월 태국업체에 피브이아르 셋톱박스 독점공급 계약을 맺은 셋톱박스 사업부와 싱가포르 지사가 첫 번째 골든벨을 울렸다.
휴맥스의 올해 화두는 ‘변신’이다. 변 사장은 매달 열리는 팀장 연찬회와 주1회 팀별로 마련하는 시이오 런천미팅 자리에서 ‘변해야 산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있다. 변 사장은 “기존 벤처의 자발적 문화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큰 기업에 걸맞은 안정된 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상황”이라며 “그러나 사람(휴먼)의 능력을 극대화(맥시마이제이션)한다는 사명에서 엿볼 수 있듯 직원 중심의 회사를 일군다는 원칙은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 휴맥스는 어떤 회사?
설립연도 = 1989년 건인시스템으로 창업, 1989년 (주)휴맥스로 상호 변경
경영실적 = (2006년치, 해외법인 포함) 매출 7276억원, 영업이익 408억원
직원수 = 650명 (남 580, 여 70)
채용방법 = 대졸신입 공채 및 경력직 수시채용
주요제품 = 디지털 셋톱박스, 디지털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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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고 착한 사람’ 원해 과장급 이상은 삼성전자 보다 월급 많아
휴맥스가 바라는 인재상은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다. 이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언론에 나서기는 즐기지 않지만 사내에서는 평직원들과도 잦은 만남을 갖는 변대규 사장의 스타일을 반영했다. 인력관리실의 김동균 상무는 신입사원 채용 면접 때 주요 착안점으로 △자기분야의 능력을 갖췄으며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는가 △달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깊이있고 진실하게 표현하는가 △어학·에티켓 등 글로벌 역량을 갖췄는가 등을 꼽았다.
신입사원들이 미래의 후배들에게 일러주는 ‘면접요령’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전략마케팅 부문에 뽑힌 김영균(27)씨는 “경포대에 가서 속옷을 팔고, 망해가는 동네서점을 도와 매출을 4배이상 성장시킨 경험을 들려준 게 면접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소프트웨어 2팀에 배치된 서동준(27)씨는 “면접 때 대학시절 영상신호 처리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을 설명했다”면서 “전공지식의 깊이보다는 해결안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대학의 논문들을 뒤지고 외국대학 교수들에게 이메일 문의를 하는 등 노력한 과정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휴맥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왠만한 재벌 계열사에 못지 않다. 연봉체계는 대체로 상후하박 형태이다. 과장급 이상이 되면 삼성전자 등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또 철저한 성과배분제도를 통해 영업이익 등에서 연초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연봉의 40%까지 성과급이 지급된다. 이밖에 자녀학자금, 가족초청행사, 건강펀드 운용 등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임주환 기자 | |